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 신경섭 변호사 작성자 청지기 2007-10-08 조회 1962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 신경섭 변호사
교만과 방종 반복… 주님은 매번 용서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입니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면서 늘 받는 도전이다. 과연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 그 분의 자녀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에 확언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가는 알고 있다. 또 한낱 먼지와 같은 존재인 나는 그 분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안다. 너무나 방종하고 거만했던 나를 몇 번이고 용서하시고 품 안에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약사였던 부친은 지금도 약계에서는 신화적인 젊은 사업가로 이름이 남아 있다. 덕분에 나는 당시에 소위 ‘있는 집 자식’들만 다니는 가톨릭재단의 사립학교인 계성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부친의 사업은 3학년이 되자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4학년이 되자 수업료가 비싼 사립학교 재학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부친은 아들이 돈 때문에 값싼 공립학교로 전학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당시 아이들은 입회비와 활동비가 엄청나게 비싼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 MRA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나는 그들의 유니폼과 방과후 활동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어느 날 수녀 한 분이 교실로 와서 영세받을 학생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나는 영세를 받으면 무상으로 유니폼을 받고 방과후 활동도 하는 것으로 알고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그렇게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나도 모르는 채 시작됐다.

얼마 뒤 부친의 사업은 완전히 거덜났다. 부친은 알코올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때 나는 대학에 진학할 형편도 안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일찍 철이 든 나는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심한 운동으로 중2 때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했다. 육사라는 최후로 선택한 길마저 막혀버렸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그리고 그간 운동으로 얻은 기술로 싸움을 일삼는 문제아로 나 자신을 던져버렸다.

그때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펼치셨다. 친구 하나가 예쁜 여학생들이 많다면서 상동교회로 인도한 것이다. 거기서 난 첫사랑을 만났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우등생이 됐고, 중고등부 성가대장과 학생회장까지 하면서 나름대로 믿음의 씨앗을 키워갔다.

하지만 첫사랑을 쟁취하고 우등생이 되자 나는 자만심과 겉멋만 들어 크리스천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5·18 광주민주항쟁으로 사회가 어수선해졌다. 나는 유학을 가겠다며 대입 대신 토플과 영어회화 준비를 하면서 고3 시절을 보냈다.

유학자율화 이전임에도 나는 자력으로 용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나이 열 아홉살. 그리고 2년 뒤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결혼 이후에 나는 심하게 방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술과 마약에 빠졌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아버지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다시 공부해 공인회계사가 됐다.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고객은 없었다. 대신 성경공부와 QT에 빠졌다. 집사가 되고, 성가대원, 회계, 주일학교 교사로 하나님 일에 즐겁게 일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사업은 무섭게 번창하고 있었다.

난 또다시 교만에 빠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리자 또 세속적인 재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술집에 갔고, 빚보증도 서주기 시작했다. 결국 돈과 사람 모두 잃었다. 대인기피증도 생겼다.

또 다시 탕자의 모습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윌로 크릭교회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개그맨 못잖게 유머러스한 목사님들의 말씀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이렇게 매번 품을 떠난 나를 받아들이셨는지를 깨달으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사역만은 경제적인 이유로 수긍하지 않고 버텼다. 그러자 하나님이 고육지책을 쓰신 것 같다. 내 사업의 후계자로 키우던 사랑하는 후배가 배신을 하는 바람에 한국으로 와야 했다. 결국 이 사건을 시작으로 모국 내의 불우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사역을 하게 됐다. 또한 내가 입버릇처럼 떠들던 모교에서 후진양성이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는 포상도 주셨다.

‘역 기러기 아빠’로 모국에 25년 만에 돌아온 나는 현재 싸움패,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 불우하게 태어난 이들도 아버지께서 크게 쓰시는 견본이 되게 만드는 가이드로서의 사역을 하고자 기도하고 있다.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7-09-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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