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사랑의 노래 ♥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조용필(1950년생/72세).
그는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을 울린다.
요즘 노래 잘 부르는 가수는 흔하지만, TV에서 자주 볼 수 없어도 그는 왜 정상에 우뚝 서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노래로만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고 이웃사랑의 마음으로 팬들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2009년–조용필 소록도공연’을 처음 마치고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한센환자들에게 남긴 그의 말은 인사치레 같았지만, 훗날 그 약속을 지켰다.
그것도 때우기씩 겉치레가 아닌, 시작부터 마칠 때 앙코르까지 14곡을 열창한 리사이틀 무대처럼 준비해
소록도를 재방문한 가수는 지금껏 조용필 단 한 사람뿐이다.

1982년 4집 앨범을 내었을 때, 매니저였던 최동규 씨가 최근 공개한 일화(逸話)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진한 감동과 함께 아름다운 이웃사랑 얘기로 전해져오고 있다.
그 앨범의 비련(조용필 작사/작곡)이 폭발적 인기몰이로 바쁜 일정을 보내던 날에,
매니저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시골에 있는 어느 요양병원 원장의 애절한 목소리였다.
“저희 병원에 올해 14살 된 지체장애 여자아이가 입원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8년간 어떠한 자극에도 도무지 감정의 미동도 없었는데, 조용필 씨의 노래 ‘비련’을 듣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가 돈은 얼마라도 좋으니, 조용필 씨가 오셔서 노래를 불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혹시 노래가 안 된다면 잠깐 얼굴이라도 보여주실 수 있을까 싶어서…”

전화내용을 들은 조용필은, 곧장 “병원으로 출발합시다!” 라고 말한다.
그날은 네 곳에 공연이 잡혔고, 1회 출연료는 꽤 높아(3〜5천만 원) 취소하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하지만 시골병원으로 달려간다.

병실의 소녀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조용필을 표정 없이 한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두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자 소녀는 펑펑 울기 시작한다.
소녀의 가족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들도 모두 울었고.
조용필은 소녀를 안아주면서 준비해 간 CD를 선물로 주고 병실을 나서려는데, 소녀의 엄마가 물었다. “조 선생님, 정말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 저… 저… 얼마를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그러자 조용필은 조용히 말했다. “따님이 오늘 흘린 저 감동의 눈물은, 제가 여태껏 여러 무대에서 노래 부르며 받은, 또 앞으로 받게 될 그 어느 것보다 더 비싼 가치가 있으니 감동받고 갑니다.”

70년대부터 우리가요계의 레전드로 최고 정상에 서있는 가왕이지만,
그가 보여준 ‘이웃사랑의 모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뜨겁고 큰 감동으로,
그에게 팬은 정상에서 바라본 더 높은 산이었던 것이다.』

40년 전 일화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위드 코로나 시대 가림막’에 이웃사랑을 깡그리 잊은 처지라서
옛 노래 ‘비련’을 들으며 글을 쓰니, 어느새 큰 머슴의 두 눈에서도 수도꼭지가 풀려 눈물이 쏟아진다.
‘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 떨리는 그대를 안고 /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 사랑의 손길…’

지난해부터 코로나19의 고통, 정치권의 물어뜯기, 아프가니스탄의 참상 등….
찌들고 망가진 삶속에서 트롯(Trot)이 돌풍을 일으켰다.
모든 방송채널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밤낮없이 지겹게 덧칠을 해대니,
온 국민이 숱한 딴따라(?)들의 뽕짝노래에 중독된 듯 빠져들게 만들어 가끔씩은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누가 조용필 노래를 ‘딴따라의 뽕짝’이라 하겠는가?
일그러진 정치꾼, 종교인, 교육자들보다 훌륭하다.
대한민국 가왕의 노래 ‘비련’은 바로 ‘이웃사랑의 노래’ 이기에….
- ♥ DEC150 / 큰 머슴 ♥ -   ☞ 지난 2016년 6월 9일 歌王 조용필의 '50주년 기념콘서트' 때의 감동 넘친 스테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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